한국 에세이는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과거엔 한 개인의 감정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기록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와 삶을 함께 해석하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문체, 형식, 소재, 작가의 태도까지. 2025년의 한국 에세이는 단지 ‘글 잘 쓰는 사람’의 글이 아닌, ‘시대를 읽는 사람’의 문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몇 년간 변화한 한국 에세이의 흐름을 문체의 진화, 작가군의 확장, 형식 실험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문체의 변화: 정제에서 유려함으로
이전의 한국 에세이는 조용하고 단정한 문체를 선호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지영의 『괜찮다, 다 괜찮다』, 『빗속을 건너다』 같은 책들은 간결하고 수필적인 느낌으로 독자의 감정에 잔잔히 스며드는 문장이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제된 문체보다는 유려하고 생생한 표현을 통해 독자의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 시리즈는 대화하듯 쓰는 구어체 문장을 사용하며,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글을 쓴다”는 느낌보다 “말을 건다”는 인상을 주며, 이는 SNS 글쓰기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흐름입니다. 또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정의 밀도와 묘사의 깊이를 함께 갖춘 문장을 통해 에세이의 미학을 한층 확장시켰습니다.
특히 요즘 에세이에서는 ‘의식의 흐름’처럼 자유롭게 이어지는 구조와 개인의 감정이 끊기지 않고 연결되는 리듬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혹은 산문시처럼. 글쓰기를 기술로 접근하기보다는 정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옮기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독자에게 ‘읽는다는 느낌보다 느낀다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변화: 작가가 아니어도 작가가 되는 시대
이전에는 에세이를 출간하는 작가들이 소수의 전문 글쓰기 종사자들이었다면, 이제는 직업 작가가 아닌 일반인 출신의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김하나·황선우는 출판계와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던 이력이 있지만, 본격 작가로 자리잡기 전에는 에세이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공감, 현실성, 감정의 조율이라는 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새로운 작가 유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유튜버, 팟캐스터, 인스타 작가들의 책 출간도 크게 늘었습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의 김애리, 『지금도 괜찮아지는 중입니다』의 정지음 등은 전문 작가가 아니지만, 진솔한 말투와 꾸밈없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신뢰를 쌓으며 작가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는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진실하게 쓴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시대적 감수성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2025년의 에세이는 더 이상 고전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시대입니다. 작가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형식의 변화: 일간 연재, 인터뷰형, 일기+그림 혼합까지
형식의 변화 또한 한국 에세이의 흐름에서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기존에는 정해진 챕터 구조와 일관된 주제로 구성된 에세이가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은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슬아의 『일간 이슬아』입니다. 이 책은 실제로 작가가 구독자를 대상으로 ‘하루에 한 편’씩 이메일로 연재했던 글을 엮은 형태로, 연재 당시의 현장감과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의 김수현은 글과 그림을 함께 실어, 감정의 결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글+이미지 혼합형 에세이는 독자의 몰입을 도우며, 글만으로는 부족한 감정선을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브런치 플랫폼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의 경우, 글쓰기와 함께 일러스트를 병행하며 브랜드형 작가로 성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인터뷰형 에세이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나 장항준이 참여한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우리』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구조는 또 다른 방식의 감성 전달입니다. 한국 에세이는 점점 더 다양한 구조와 감각, 조형적 실험을 받아들이며 확장되고 있습니다.
2025년의 한국 에세이는 문체, 작가, 형식의 세 가지 축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다정하고, 더 솔직하며, 더 실험적인 글쓰기가 주목받고 있는 지금, 에세이는 문학의 가장 유연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변화는 낯설지만, 독자들은 그 변화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감정과 사유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글도 누군가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어쩌면 바로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