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오랫동안 ‘혼잣말’의 문학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조용히 나를 마주하고, 속마음을 꺼내고, 일기처럼 기록하는 장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한국 에세이 흐름을 보면, 이 장르가 ‘혼자만의 말’이 아니라 ‘같이 듣고 나누는 말’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감, 연대,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이 되었고, 이는 에세이를 사회적 언어로 확장시켰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에세이가 개인의 내면 독백을 넘어 타인과 소통하고 집단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예전에는 에세이를 통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을 기록했다면, 지금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에세이의 방향성이 되었습니다.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타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인터뷰형 에세이로, 책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통해 독자와 작가, 그리고 대상이 함께 감정의 끈을 나누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 책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곧 나를 돌아보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공감이란 결국 타인을 수용하려는 자세에서 비롯됨을 보여줍니다.
또한 황정은 작가의 『아무도 아닌』은 정제된 문장 속에 공동체적 고통과 연대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회적 약자, 소외된 계층, 잊힌 사건 등을 소재로 하면서도, 이 책은 거칠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도 이 마음을 아나요?"라고. 이는 독자에게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연대의 씨앗을 틔우는 감성적인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2025년의 에세이는 ‘혼잣말’이 아니라 ‘건네는 말’로의 전환이 뚜렷합니다. 읽는 사람을 전제로 한 글쓰기,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하길 바라는 문장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이 변화는 에세이의 기능을 ‘기록’에서 ‘공유’로, 그리고 ‘공감’에서 ‘연결’로 넓혀가는 흐름을 반영합니다.
나만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오늘날의 독자는 단순히 작가의 이야기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따라서 작가들도 에세이를 통해 ‘나만의 경험’에서 ‘우리 모두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스포츠라는 독특한 소재로부터 여성의 삶, 가족과 사회, 몸과 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선을 추적합니다. 이 책은 에세이이지만, 단순한 개인기록이 아닌 시대의 정서를 관통하는 공감서사로 읽힙니다.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돌보는 여성’이라는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 안에서의 정서와 피로, 애정을 글로 풀어냅니다. 이 에세이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너무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솔직함이 독자 각자의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하나의 집단적 감정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깊은 공감은 결국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구나’라는 확인에서 나옵니다. 더 이상 에세이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자랑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경험이 보편성과 연결될 수 있을 때, 독자와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요즘 에세이는 ‘우리’라는 단어를 더욱 자주 사용하고, 1인칭보다 복수형의 언어를 통해 감정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연결의 장르로서의 에세이
2025년의 한국 에세이는 SNS, 브런치,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결되며 더욱 넓은 소통의 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황선우·김하나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책으로서의 존재를 넘어서 팟캐스트, 굿즈, 강연 등으로 확장되며 수많은 여성 독자들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단순히 책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실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에세이는 이제 ‘텍스트’만이 아닌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박상영 작가의 여러 강연이나 온라인 팬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에세이는 젊은 성소수자들의 감정과 현실을 드러내면서, 독자들 사이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냅니다. 이들은 단지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어떤 감정에 함께 머무는 연대의 구성원이 됩니다.
또한 SNS 기반의 짧은 에세이 콘텐츠는 이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자리잡았습니다. 정문정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수많은 ‘짤’로 퍼지며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 자체로 일상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에세이는 더 이상 책장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 사람과 이어지는 구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에세이가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2025년의 에세이는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닙니다. 말은 여전히 1인칭으로 시작되지만, 도착지는 독자의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는 진심어린 문장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감정을 나누게 만듭니다. 에세이가 가진 감동은 이제 고독이 아니라 ‘함께 있음’에서 옵니다. 당신이 지금 듣고 싶은 말, 혹은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써보세요. 그것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