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의 서점가에는 에세이가 다시 중심에 서 있습니다. 잠시 소설과 자기계발서의 인기에 밀렸던 시기를 지나, 독자들은 다시금 에세이의 ‘진정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는 단지 유행의 순환이 아니라, 시대가 감정의 회복을 원하고, 솔직한 언어를 갈망하며, 누군가의 고백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내면의 흐름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에세이가 다시 사랑받는 이유를, 회복의 언어, 시대정신, 진정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해봅니다.
마음을 회복하는 글, 에세이의 역할
오늘날의 에세이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회복의 도구’로 읽힙니다. 특히 팬데믹과 긴 사회적 불안의 시기를 지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부서진 채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에세이는 무조건적인 위로 대신, 조용한 동행을 선택합니다. 대표적으로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은 암 투병의 경험을 토대로, 생존에 대한 집요한 감정들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독자에게 무게를 지우지 않고, “나도 끝까지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전염시키며 회복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또한 장은정의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할 때』는 일상 속의 번아웃, 감정의 소모, 쓸쓸함을 차분하게 포착합니다. 이 책은 특정 사건보다 감정의 결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글쓰기의 힘을 보여줍니다. 단지 잘 살아라거나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사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복 중심의 에세이는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되 감정을 소비시키지 않습니다. 위로가 되면서도 소진되지 않는 글, 그건 공감이 아닌 회복의 문장일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요즘 에세이는 다정하되 단호하고, 조용하되 단단합니다.
시대가 감정을 읽고 싶어 한다
에세이가 다시 주목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시대가 감정을 읽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고, 정보에 피로하며, 끊임없이 판단을 요구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독자들은 정보보다 ‘느낌’을, 논리보다 ‘감정’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욕구가 바로 에세이라는 장르를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세랑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일상적 소재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속에서 사회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유를 함께 전달합니다. 이 책은 기후, 인간관계, 도시 생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국 독자의 ‘감정’과 만나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책을 정보가 아닌 ‘감정의 연습장’처럼 읽습니다.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여성이라는 존재의 감정사를 유쾌한 서사로 녹여내며 시대를 거스르지 않고 흐르는 법을 보여줍니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건 명령형 문장이 아니라, 해석 가능한 감정입니다. 감정을 해석하고, 감정과 함께하는 능력은 지금 에세이가 가장 강력하게 수행하는 역할 중 하나입니다.
결국 에세이가 다시 사랑받는 이유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시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다루는 글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그 감정이 시대와 직접 연결된 적은 드뭅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문장에 끌린다
에세이 붐의 근본적 이유는 바로 진정성입니다. SNS에는 매일 수백만 개의 감정 표현이 떠돌지만, 독자는 그 안에서 진짜 말, 진짜 표정을 찾고 있습니다. 이슬아의 『일간 이슬아』는 하루에 한 편씩 쓰는 글이지만, 그 짧은 편지에는 ‘가짜 감정’이 들어갈 여유가 없습니다. 진짜 일상, 진짜 피곤함, 진짜 사랑이 문장 안에 묻어 있습니다.
김애리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는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진심만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그녀의 문장은 기술보다 감정이 앞서고, 구조보다 마음이 먼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글이 다소 서툴러도, 독자는 그 진심에 반응하게 됩니다.
지금 시대는 ‘진짜’를 원합니다. 꾸며낸 감정, 교훈적인 문장, 포장된 감동은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울퉁불퉁한 고백,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진정성이란 완성도가 아니라, 의도가 드러나는 태도입니다. 에세이는 그 누구보다 솔직한 장르이고, 그래서 시대는 다시 에세이를 필요로 합니다.
에세이는 지금 다시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문장이나 형식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 감정,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입니다. 정보와 기술보다 사람이 더 중요해진 이 시대, 에세이는 여전히 가장 사람다운 문장입니다.